둔황, 우루무치 등 실크로드 여행
상인들 북적 실크로드엔 모랫바람과 옛 흔적만이‥
실크로드는 모래와 바람의 길이었다. 지금까지 세상에 쌓아올려졌던 어떤 것들이, 거기서 일제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언덕과 그 언덕에 얼룩진 빛과 그림자들이 바람의 분주한 손길에 휘둘리며 굽이치고 있었다. 그곳에 아직 무너질 것들이 남아 있어, 세상의 나그네들을 불러모은다. 한번쯤 모래처럼 무너져내려본 이라면, 누가 이 선 굵은 여행길을 마다겠는가.
여기 무너지며 우는 모래산, 밍사산(鳴沙山)이 있다. 시안(서안)에서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는 실크로드의 중국쪽 관문, 옛 이름이 사주(沙州)인 둔황이다. 낮엔 모래가 흘러내리고 밤엔 바람이 모래를 쓸어올려 예리한 칼능선을 이룬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중턱에 오르면 바람과 빛이 빚어낸 절묘한 무늬들이 가슴에 박혀 온다. 모래 흘러내리는 소리가 마치 산이 우는 듯하다 해서 붙은 산 이름이다. 쌓이고 무너지기를 되풀이하며 수천년을 울고 있는 이 모래산의 눈물이 산기슭 ‘월아천’에 고여 있다. 초생달 모양의, 3000년째 한번도 마른 적이 없다는 오아시스다.
밍사산 동쪽, 둔황에서 25㎞ 떨어진 곳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무너져내리는 바위절벽이 있다. 서기 336년 한 고승이 이곳에 석굴을 파고 수도를 한 이후 1000년에 걸쳐 1.6㎞ 길이의 절벽에 700여개의 석굴이 만들어졌다. 윈강(운강)석굴·룽먼(용문)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의 하나인 둔황 막고굴(莫高窟)이다. 석굴에 안치된 엄청난 수의 불상들과 찬란한 벽화들이 손전등을 든 관람객들의 숨을 멎게 한다. 역시 빛바래고 무너져가고 있으나, 어떤 것은 놀랄만치 선명한 옛 색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인도 불교 도입기에서부터 원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불교문화의 특징들이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면서 버텨온 흔적이다. 가장 큰 불상은 산을 파서 만든 34.5m 높이의 미륵불로 측천무후 시대의 것이다.
이 엄청난 유적이 서양에 알려지면서 ‘도적’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이 불상을 떼어간 자리, 벽화를 도려내간 자국이 뚜렷이 남아 있다. 오랜 세월 무너져내린 것들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인간의 탐욕이 베어낸 자국은 참혹하다. 이곳에서 수많은 고서들과 함께 발견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프랑스로 넘어간 것도 이때다. 벽화 불상이나 벽화 장식이 남아 있는 굴은 492개, 나머지는 빈 굴이다. 10개의 석굴만 일반에 개방된다.
투르판 남쪽의 옛 고창국 성터인 고창고성. 천축으로 가던 삼장법사가 한달간 머물던 곳이라 한다.(위) 투르판 교하교성. 두 강 사이의 30m
높이 벼랑을 파들어가 만든 성이다. (아래)
밤기차로 ‘비옥한 땅’이라는 뜻을 가진 투르판으로 향한다. 기차도 바람이 좌우한다. ‘30리 바람구역’이니 ‘100리 바람구역’이니 해서 간혹 기차를 쓰러뜨릴 정도의 바람이 몰아친다. 바람이 거셀 때 기차는 아예 발이 묶인다. 투르판 분지는 해수면보다도 낮은 거대한 분지이자 오아시스다. 일교차가 심해 여름 한낮엔 섭씨 47도 이상 올라가고 밤엔 10도 안팎까지 떨어진다. 그래서 투르판엔 ‘아침엔 털옷 입다가, 낮엔 웃통 벗고 수박 먹고, 저녁엔 난로를 피운다’는 말이 있다. 여름 한낮 지표면 평균온도가 70도. 안내를 맡은 조선족 송유정(45)씨는 “모래엔 닭알 구워 먹고, 돌에는 지지미 부쳐 먹는 데”라고 말했다. 기후가 건조해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는 당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투르판은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이요, 톈산산맥의 동쪽 끝자락이다. 남동쪽에 기원전 1세기부터 1400년 동안 번성했던 고창국의 거대한 성터 고창고성이 있다. 둘레 5.4㎞로 외성과 내성으로 나뉜 이 웅대한 토성은 몽고족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이래 궁궐 및 절터들의 흔적만이 남아 바람에 씻기고 있다. 경전을 구하러 가던 삼장법사가 고창왕의 간청으로 이곳에 머물며 한달간 강론을 펼치기도 했다는 곳이다. 노새가 끄는 수레를 타고 성 안을 둘러볼 수 있다.
또다른 유적인 교하고성은 규모는 다소 작으나 더 실감나게 옛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짚어볼 수 있는, 교하국(기원전 2세기~기원후 14세기)의 성터다. 강이 둘로 갈라져 내린 지역의 높이 30m의 벼랑을 파고들어가며 건설한 성이다. 길이 1.6㎞, 폭 300m의 성에 사원과 종루·우물터·관공서·민가·감옥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최대 6000명 가량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특이한 것은 200여개에 이르는 어린아이 무덤이다. 전염병이 돌아 생긴 무덤이라고도 하고, 몽고 침략 당시 성에 있던 쿠스족(고사족)이 스스로 아이들을 죽여 묻고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 우루무치의 상징 중 하나인 홍산공원에서 내려다본 우루무치 시내.
막고굴보다 훼손이 더 심한 곳이 투르판 천불동의 석굴이다. 9~10세기 위구르인의 불교유적인 57개의 석굴은 1000개의 불상과 수많은 벽화로 장식돼 있었다지만, 성한 곳이 드물 지경이다. 이슬람교 전파로 훼손된 데다, 서양 도적들이 들어내고 떼어내 낙타로 실어갔기 때문이다.
투르판의 또다른 볼거리는 2000년 전부터 건설됐다는 관개용 지하수로다. 톈산의 눈 녹은 물을 땅속 굴을 통해 끌어와 농사짓고 식수로 쓴다.
우루무치는 투르판에서 180㎞. 중국의 자치구중 가장 넓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수도다.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을 가진 우루무치는 지금 인구 200만에 이르는 현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카자흐족이 사는 남산목장에 가면 이들에게서 말을 빌려 타고 소나무숲 울창한 3㎞ 거리의 계곡을 다녀올 수 있다. 톈산 자락에도 ‘천지’가 있다. 빙하가 녹아 고인 고산 호수다. 우루무치강에 살던 용이 요동을 쳐 자주 홍수가 일어나자 이를 죽여 머리를 잘라 묻고 진용탑을 세웠다는 홍산공원에 오르면 우루무치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아편전쟁의 주요 인물인 민족주의자 임칙서의 동상이 이곳에 있다.
둔황 투르판 우루무치/글·사진 이병학 기자
● 여행정보=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늦다. 그러나 먼 거리에 있는 베이징 표준시를 쓰므로 실제 시차는 3시간쯤 난다. 밤 10시면 초저녁이다. 1위안이 140원. 물가는 싼 편이다. 투르판 택시 기본요금 5위안, 우루무치는 6위안(베이징의 경우 10위안). 밤에는 앞자리에 태우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는 부르는 대로 주지 말고 흥정을 통해 깎아야 한다. 도시마다 깨끗한 대형 식당들이 있다. 야시장에서 파는 양고기 꼬치구이 등도 먹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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