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신라방[新羅坊]이라 하였고, 거기에 세운 사찰을 신라원[新羅院]이라 하였으며, 정착거류민, 승려 등등이 자치적으로 행정 관리를 한 기구는 신라소[新羅所]라 칭하였다.
+++ 305 성도[省道]와 901성도가 만나는 사거리에 세워진 법화원[法華院] 가는 길 안내판. - 한글이 함께 써 있어 정겹게 다가 온다. ++
+++ 법화원은 산동성 위해시 영성시 석도진[石島鎭]에 있는 적산 풍경구 안에 있다.
<"友誼連三國, 美名揚五洲" - 우호로 세 나라를 이으니, 그 명성이 세상에 떨치다! > +++
+++ 법화원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세운 석패방. - 문이 다섯이면 황궁에만 세우는... +++
+++ 법화원으로 드는 정문을 지키는 8방의 바람과 5가지 날씨를 관장하는 풍백[風伯]과 덕이 너른 비를 부리는 우사[雨師- 故雨獨稱"師"也]의 석상 +++
+++ 가슴이 두근 거리는 법화원의 정문 전경. +++
+++ 날씨 좋은 날에 입장을 하기 전 뒤로 돌아 동해 바다를 굽어 보면 이런 풍경이 보인단다. 탁상용 달력을 얻어와 찍어 붙였음. - 안개가 자욱하여 제대로 볼 수가 없다는 여러 블로거들의 한탄! 탱이가 이른 날에도 다르지 않았다. 소수민족 자치구를 뺀 나머지 중국땅은 안개가 늘 뿌옇게 끼여 있다는.... +++
+++ 한 번의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구제하니 그 공덕이 더할 나위 없다.[一敎普渡渡天下人功德無上]. 왼쪽 대구는 뭐라고 하시는 말씀인지.....? +++
+++ 삼불보전 아래 청해진 대사 장보고의 공적비가 굳건하게 서있다. +++
+++ 고국에서 다녀간 여러 단체들이 저마다 비[碑]를 남긴다는... ++++
++++ 관음전++
고[古]와 금[今]이 상존하는 극락보살계. 관음불상 뒷쪽 기와 지붕 아래에는 천수관을 상징하는 조각을 새겼는데 매우 섬세하고 단아하다.
+++ 십팔 나한. 좌로부터 伏虎,,芭蕉, 托塔, 沉思, 笑獅, 探手, 挖耳, 過江, 看門 羅漢. +++
+++ 그리고 長眉, 布袋, 靜坐, 開心, 騎象, 喜慶, 擧鉢 , 騎鹿, 降龍 羅漢. +++
고[古]와 금[今]이 상존하는 극락보살계.
관음전 마당의 극락 보살은 물과 불을 뿜으며 한 바퀴 도는 "쑈를 한다".
요즘 한참 나오는 광고 같이 뭐 주는 혜택이 없는데도.... 관음불상 뒷쪽 돌 기와 지붕 아래에는 천수관을 상징하는 조각을 새겼는데 매우
섬세하고 단아하다
+++ 적산 서원과 적산각. +++
석도 풍경구 안에는 법화원과 장보고 기념관 외에도 여러 시설물들이 있는데.....
법화원에서 장보고 기념관으로 가는 길 목에 있는 영성 민속관에 잠시 들렸다.
그 동안 자전거를 타고 꽤나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지만, 역사 유적지이나 박물관보다는 자연풍경만을 찾아다니다 보니 부족함이 많았는데....
아쉬운 대로 이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흔적을 조금은 볼 수가 있었다.
자전거 타고 전국을 돌며 찾았던(?) 도리깨도 한 쪽에 당당하게 서 있더라는...
+++ 돌도끼 ! +++
+++ 바다에서 사용했던 공[木球] 같은데... +++
+++ 돌로 된 자물쇠. +++
중국 땅에 남은 우리 선조의 발자취를 찾아 간다는 흥분을 감출 수는 없다.
그러한 반면....
신라 사람들이 살았다는 신라방은 그 어디에도 흔적이 없고...
자치기구로 영사관 구실을 했을 신라소도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완전하게 중국화 된 법화원 만이 그들에 의하여(일본과 중국의 합작) 재생되어 어디서도 느껴볼 수가 없다.
오히려 쓸쓸하고 서운함으로 느껴짐은 법화원을 거니는 내내 머릿속을 꽉 메워 무척이나 답답하다.
그 것만이라도 하며 아쉬움을 달래는 수 밖에...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적산 법화원"을 알고 있지만...
인터넷에서 찾아 본 몇 개의 블로그에서는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중국의 행정 구역 http://cafe.naver.com/acebike/926
싼둥은 17개의 지급시로 나눠져 있는데, 연평도의 새볔닭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싼둥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웨이하이.
그 지급시 중에 롱청[榮成]이라 불리는 곳으로 제일 아래 남쪽에 위치한다.
아는이에게 물어 대중 교통을 이용한다든지, 기사가 딸린 자가용이 있다면 수이 찾겠지만, 이는 자전거를 타고 찾아 다니는 묘미를 아는 내게는 재미 없는 방식이니... 지도를 보고 직접 찾자하니...
지도를 보고 어렵게 찾아 가는데...
적산[赤山]을 찾자니 내가 가진 지도에는 그런 지명이 없다.
적산의 적[赤]은 붉다는 뜻이고...
그런데 척산[斥山]이라는 지명이 있다. 쭝궈 사람들의 소리값은 같은 chi에 성조도 뒤가 뚝 떨어지는 똑 같은 4성.
우리 소리값도 '적'과 '척'으로 차뿌둬이기는 한데....
지금의 싼둥[山東]성 동쪽 웨이하이[威海]시.
동남쪽 끝의 원덩[文登]시 쓰다오[石島]진 적산[赤山]에 이름하여 “석도 적산 풍경구[石島 赤山 風景區]”안에 "법화원"이 있다.
장보고 기념관
+++ 법화원을 먼저 들려 이 표지판을 따라 오솔길로 가면 기념탑에 먼저 이른다. +++
+++ 기념관 뒤쪽에서 탑으로 오르는 길. 말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다. +++
+++ 한국 세계 민족 연합회 회장 최민자님이 1994 7 24일에 세운 탑으로 높이가 19m에 이르며 두 기둥을 세운 것은 한국과 쭝궈의 우호적 관계를 나타 낸다고 한다. +++
+++ 왼쪽 위 사진은 탑을 세운 내력 안내문이고, 오른쪽 위는 동방 해양 무역을 장악한 장보고를 기리기 위한 대한 민국 걸스카우트 부천 지구 위원장님의 방문 기념비이며, 오른쪽 아래는 청해진으로 불린 전남 완도군의 군수님께서 방문하시어 기념식수를 하셨다고 단단한 화강암에 파서 만대에 보존될 기록을 남기셨다. 끝으로 롱청시 인민 정부에서 한자로 근사하게 써서 시[市]가 지정한 문물이라는 표시석을 세웠다. - 나도 자전거를 타고 방문한 첫 번째 한국인이라고 비석을 하나 세울까! +++
+++ 탑에서 동쪽을 바라 보면 장보고가 누비던 바다(석도만[石島灣])가 보인다. -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음. +++
+++ 한중 양국은..... 장보고 전기관 안에 설명문. 한자와 함께 한글로 된 설명문이 붙어 있다. ++++
+++ 기념관 안에 우뚝 서서 동해 바다를 굽어 보고 있는 해상왕 장보고의 동상. +++
+++ 동상 뒤에 새겨진 장보고의 일생+++
때는 신라 시대.
지금의 전남 완도 어느 이름 없는 어촌 마을에서 태어나...
당나라로 건너가 무녕군[武寧軍] 소장[小將]을 지냈고...
당나라에 위협이 되는 이사도를 평정하고....
귀국하여 청해진을 설치 운영하며, 해적을 소탕하고 3국 무역의 전초기지인 청해진을 운영한 해상 무역왕 .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제압한 후...
그 후예 이정기 장군이 지금의 싼둥으로 내려와 고구려의 "정기"를 이어 가는데.... 그래 그럴까? 지금도 싼둥에는 이[李]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산다.
국제 무역을 하며 해적을 소탕하고 승승장구하던 장보고가 그의 후손인 이사도를 제압하였다는 설명에서는 씁쓸함이...
신라인 장보고가 당 나라 무녕군으로 고구려의 후예를 진압한 전쟁을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개념으로 들여다 보자니...
+++ 2,3,4 전시실... +++
++ 제 5 전시실. - 源遠流長(근본이 오래고 흐름이 길다). +++
+++ 실존인물 대사 장보고는 세나라를 맺어 교류하였고, 전설의 해신[明神]은 사해를 복되게 하다. - 남쪽으로 난 정문 맞은 편 벽. +++
+++ 석도 풍경구 구내로 들면 어디서든 장보고 기념관으로 연결이 가능하다. +++
+++ 장보고 기념관에서 까맣게 올려다 보이는 세계 최대의 단조 동상으로 적산에 앉아 사해를 보우하는 명신[明神]. 높은 곳에 편안히 앉으셔 동해를 굽어보며 살피시다. 우리들의 콘테이너가 사해로 뻗어 나가기를 복우[福佑]하시며...+++
+++ 명신이 앉아 계신 산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장보고 기념관. 전경이 한 눈에 들어 온다. +++
이곳 '석도 적산 풍경구'는 그 옛날의 신라방이나 신라소 등등은 흔적이 없고...,
중국 츠산[斥山] 그룹[集團] 유한 공사에서 인민폐 3억 위엔을 투자하여 2003년 5월 문을 열었다는데.... 장보고 전기관과 극락보살계, 법화탑, 영성 민속관, 민간 예술관, 적산서원, 대명성경[大明聖境]과 적산명신 등등을 지어 놓았고 인공호수가 5개이고, 36만 ㎡에 심은 나무가 10만 그루란다. 그래 그런가 입장료가 엄청 비싸 인민폐 80위엔.
동해연안 3개 시(칭다오 엔타이, 웨이하이)에 사는 고구려 신라의 후예가 10만을 넘어 가고 있다.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그들을 만나볼 수가 있다.
그밖에도 중국 대륙이 좁다고 여러 지방 어디를 가나 공장을 세우고, 식당을 열고....
전국에 영사관이 설치되고....
말이 통하지 않고 습관과 문화가 다른 중국에 건너와서 피와 땀을 흘리면서 딸라를 벌고 있는 그들이 곧 오늘을 사는 장보고 대사가 아닐까 한다.
부지런히 일 하면서 꾸준하고 묵묵하게 양국의 우의를 다지는 분들이 수두룩하다.
후세들은 그들을 기억하여 탑을 세우고 기념관을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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