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보어(可能补语)
결과보어나 방향보어 앞에 구조조사(構造助词) ‘得’를 첨가하면 가능보어가 된다. 가능보어는 동작이나 상태의 실현 가능성을 나타낸다. 다음은 결과보어가 가능보어로 변한 것이다.
- 看懂(보고 이해하다) → 看得懂 (보고 이해할 수 있다)
- 听懂(듣고 이해하다) → 听得懂 (듣고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방향보어가 가능보어로 변한 것이다.
- 上去(올라가다) → 上得去 (올라 갈 수 있다)
- 回来(돌아오다) → 回得来 (돌아 올 수 있다)
결과보어나 방향보어가 아닌 성분도 가능보어가 될 수 있다. ‘了, 动, 来’는 ‘得’를 동반하여 가능보어가 될 수 있다.
- 去得了
갈 수 있다. - 搬得动
옮겨 이동시킬 수 있다. - 合得来
어울릴 수 있다.
가능보어문의 부정형
가능보어문의 구조조사(構造助词) ‘得’를 ‘不’로 바꾸면 부정형이 된다.
- 看得懂(보고 이해할 수 있다) → 看不懂 (보고 이해할 수 없다)
- 听得懂(듣고 이해할 수 있다) → 听不懂 (듣고 이해할 수 없다)
가능보어의 특징
진술문에 나오는 가능보어는 대개 부정형이다.
- 他的话我听不懂。
그의 말은 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 - 这本书我一天看不完。
이 책은 나는 하루에 다 볼 수 없다.
가능보어의 긍정형은 의문문 혹은 의문문의 대답에 주로 사용된다.
- 你听得懂他的话吗?
그 사람의 말을 알아들으실 수 있습니까?
-听得懂。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위의 경우를 제외하면, 진술문에는 일반적으로 가능보어의 긍정형이 사용되지 않는다. 긍정형으로 가능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경우에는 대개 ‘能+동사+결과보어’의 형태를 사용한다.
- 他的话我都能听懂。
그 사람의 말은 제가 모두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가능보어와 조동사의 가능성의 차이
가능보어가 나타내는 가능성과 ‘能’, ‘可以’가 나타내는 가능성의 정도는 거의 같다. 그러므로 다음 문장은 모두 가능보어문으로 바꿀 수 있다.
- 这篇文章不太难, 你们能看懂。
=这篇文章不太难, 你们看得懂。
이 글은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까, 너희가 보고 이해할 수 있어.
그러나 ‘可以’, ‘能’이 허가를 나타내는 경우와 ‘不可以’, ‘不能’이 금지를 나타내는 경우에는 이들을 가능보어로 바꿀 수 없다.
- (1) 我可以进去吗?
내가 들어가도 됩니까? - (2) 这是女生宿舍, 男生不能进去。
여기는 여학생 기숙사이므로 남학생은 들어가면 안됩니다.
(1)의 ‘可以’는 ‘허가’를 나타내므로, ‘可以进去’를 ‘进得去’로 바꿀 수 없으며, (2)의 ‘不能’은 금지를 나타내므로, ‘不能进去’를 ‘进不去’로 바꿀 수 없다.
가능보어를 동반한 동사 앞에 다시 ‘能’이나 ‘可以’를 첨가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가능성이 더욱 강조된다.
- 这篇文章我能看得懂。
이 글은 내가 보고 이해할 수 있다. - 他们中午以前可以回得来。
그들은 점심 이전에는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조동사의 부정형과 가능보어의 부정형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 这件事我办不了。
이 일은 내가 처리할 수 없다. - 这件事我不能办。
이 일은 내가 처리할 수 없다.
위의 우리말 번역은 동일하다. 이는 우리말에서 가능성을 나타내는 형식이 ‘…수 있다’라는 하나의 형식 밖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중국어의 가능성 표현 형식은 다양하며, 그들의 기능은 각각 다르다. ‘不’는 자신의 바로 다음에 나오는 하나의 성분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办不了’에서는 ‘办’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了’가 부정된다. 그러므로 위의 ‘办不了’는 ‘처리하는 행위를 개시할 수는 있지만, 처리를 완료할 수는 없다’라는 의미를 갖게된다. 이와 달리 ‘不能办’에서는 ‘能’이 부정되므로 위의 ‘不能办’은 예컨대 규정이나 법률 때문에 근본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 (3) 明天我去不了。
내일 나는 갈 수 없다. - (4) 明天我不能去。
내일 나는 갈 수 없다. - (5) 明天我来不了。
내일 나는 올 수 없다. - (6) 明天我不能来。
내일 나는 올 수 없다.
중국인은 ‘내일 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4)보다는 (3)으로 대답하는 것이 부드럽게 느껴지거나 예의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3)이 ‘가고 싶기는 가지만, 가는 것을 달성할 수 없다’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4)는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4)는 경우에 따라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5-6)도 이와 동일한 논리로 설명된다. 그러나 실제의 대화에서 위의 두 가지 형식은 혼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출처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허성도교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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