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내용)
리가 역사 지구는 중세 및 후기의 도시 구조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으며, 이곳에 있는 아르누보 혹은 유겐트 양식의 건축물은 세계 어느 곳과도 비견할 바 없이 양적, 질적인 면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세기 목조 건축물 또한 매우 훌륭하다.
고대 도시의 고고 유물은 11세기 후반에 리드제네(Ridzene) 강과 다우가바(Daugava) 강의 합류로 형성된 반도에 해외 교역소들과 함께 리브족(Livs)과 쿠르족(Cours)의 주거지가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곳은 동양과 서양 간의 무역 교차점이 되었다. 리보니아는 1184년에 게르만인 수도사 마인하르트(Meinhard)에 의해서 기독교화되었고, 초기인 1201년에 알베르트(Albert) 주교에 의해 도시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교와 법령 사이의 갈등, 다른 한편으로는 상인들의 갈등이 지속되었고, 1221년에 주민들은 게르만 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을 성공시켰다.
시민들은 도시의회를 만들고 입법부와 행정부를 구성했다. 리가는 독립도시로서 번영을 누리며 발트 해 연안의 뤼베크(Lübeck)와 그단스크(Gdańsk)에 이어 세 번째 상업 도시가 되었다. 1282년에는 뤼베크, 비스뷔(Visby)와 동맹을 맺어 한자 동맹 도시가 되었다. 15세기경에 리가는 전형적인 한자 도시로서, 구불구불한 도로에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고, 도시의 중심에는 큰 시장 광장과 강력한 요새 시설이 있었다.
16세기 중반에 리가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종교개혁으로, 리가는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1530년대와 1540년대의 종교개혁 반동을 잘 극복해 냈다. 두 번째, 1559년에 있었던 러시아의 폭군 이반의 무력은 견뎌내지 못했다. 리가는 러시아에게 점령되었고, 이어서 폴란드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리가는 스웨덴의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폴란드 사이에 놓이는 처지가 되었다.
1621년에 리가는 확대된 스웨덴 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스웨덴과 러시아가 충돌하는 동안 몇 년 간의 전쟁을 겪었다. 리가는 스웨덴 왕국의 최대 도시였다. 1710년에 폴타바 전투(Battle of Poltava)에서 스웨덴의 카를 12세가 패배하자 리가는 러시아 군대에 함락되고 9개월 간 포위되어 1918년, 라트비아 공화국이 탄생하기까지 러시아 제국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초기 구조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단순한 목조 건물이 반도의 끝에 있는 항구 주변에 모여 있고, 거리는 통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방어벽은 없었던 것 같다.
리가 역사 지구는 중세의 옛 도시, 19세기의 반원형 도로, 대로 외곽에 있는 18, 19세기의 바둑판 형태 교외 지역의 3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중세의 가옥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는데, 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삼형제의 집(House of the Three Brothers)’으로, 15세기부터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17세기 후반의 레우템(Reutem)의 집과 담스템(Dammnstem)의 집이 더욱 기념적인 건물로서, 인상적인 외관은 물론 내부 장식과 부속물들이 주목할 만하다. 도시의 성곽은 19세기 중반에 해체되었으나 일부는 보루로 바뀌어 재건되었다.
대로에는 국립극장과 라트비아 미술관을 비롯한 19, 20세기의 중요한 건물이 많다. 대로는 유럽에서 절충주의 유행과 때를 같이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양식이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급속하게 확장되고 발전된 교외 지역은 러시아 양식의 고전적인 목재 건물이 남아 있고, 요새를 없애고 나서 신도시 건설 계획을 실행하면서,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생겨난 건물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 주목된다. 건축가들은 절충주의 양식에 따라 화려한 모습을 많이 만들어 냈는데, 마이스타루(Meistaru) 거리에 있는 ‘고양이의 집(House of the Cat)’이 좋은 사례이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핀란드를 거쳐 리가에 들어와 교외 지역에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들을 만들어 낸 것은 아르누보 양식이었다. 그 예가 셀 수 없이 많은데, 그중에서 아마 가장 탁월한 것이 알베르타 거리와 엘리자베스 거리에 있는 마카일 아이젠스타인(Mikhail Eisenstein)의 작품들일 것이다. 낭만주의가 라트비아에서는 핀란드를 본떠 유겐트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이 운동은 라우베(E. Laube)와 바나그스(A. Vanags)와 같은 건축가들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고, 그들의 멋진 작품이 알베르타(Alberta) 거리와 브리비바스(Brivibas) 거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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