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내용)
루앙프라방이라는 이름은 13세기 말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353년부터 란상(Lan Xang)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불교의 중심지뿐만 아니라 비단길의 교차 지점에 있어 부유하고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1560년 비엔티안(Vientiane)이 수도로 정해지기까지는 루앙프라방이 수도였다. 이때 루앙프라방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는데, 이 이름은 그보다 앞서 크메르(캄보디아)에서 들여온 유명한 불상(‘Phra Bang’이라는 황금 불상)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라오스의 도시들은 인접한 사원과 수도원으로 왕궁을 방어하는 유럽 도시의 형태를 따랐다. 왕궁 주변으로 특색 있는 마을 공동체가 많이 형성되어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였으나 단일 행정 독립체로 통합되지는 않았다. 그 마을들은 도시로서가 아니라 상업 중심지로서 기능했기 때문에 당시 타이나 캄보디아에서 볼 수 있던 큰 상업 지역을 갖지는 못했다.
17세기 말에 수리나 봉사(Sourigna Vongsa) 왕이 죽자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이어졌다. 란상 왕조가 처음에는 독립 왕국 2개로, 즉 비엔티안과 루앙프라방으로 분리되었다가 나중에는 3개 왕국으로 나뉘어 참파삭(Champasak) 왕국이 탄생되었다. 루앙프라방은 1946년까지 왕실 수도 역할을 유지하다가 그해 비엔티안이 행정 중심지를 이어받았다.
이 반도는 도시의 정치적·종교적 중심지로 왕실과 귀족이 거주했으며, 종교의 발상지이기도 했다. 강둑을 따라 건설한 방어벽으로 방어되어 반도를 근본적으로 봉쇄하였다. 건물은 대부분 전통에 따라 목재로 지었다. 사원의 일부는 돌로 지었다. 이 도시의 식민지 시대의 요소는 벽돌로 지은 단층이나 2층의 계단식 가옥에서 볼 수 있으며, 발코니가 있고 목재로 만든 다른 장식물도 있다.
상업 건물은 메콩 강을 따라 모여 있고, 개인 주택들은 흩어져 있다. 사원과 왕궁은 반도의 길이를 따라 이어지는 파비 대로(Avenue Pavie)의 한편에 줄지어 있고, 맞은편에는 전통 가옥과 식민지 시대 가옥들이 있다. 행정 건물은 대부분 제르니에 대로(Rue Gernier)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사원은 일반적으로 예배 장소인 사당·예배소·도서관·사리탑·돌기둥과 보조 건물, 거주민이나 방문객이 거처하는 건물인 수도원·공용건물·수도실·식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복도 3개와 현관 1개인 단순한 사당이다.
실내는 주요 불상이 놓일 좌대와 설교단, 테라스, 그리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정교하게 조각하여 장식했지만 벽화는 비교적 단순하다. 루앙프라방 사당들은 주거의 이미지 때문에 단순하게 지었는데, 개방되어 있거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라오스의 전통적 목조 가옥은 기본적으로 2개 공간으로 나뉘는데, 개인의 방과 공용 테라스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목재 기둥 위에 높여 짓고, 그 아래에는 작업을 하는 공간과 남자와 가축의 휴식 공간이 있다. 벽은 나무판자나 대나무로 엮어 세웠다. 발달된 형태의 가옥은 프랑스가 벽돌을 들여온 이후 벽돌을 사용해 지었지만 전통 가옥의 일반적 배치와 외양을 지킨다. 마지막으로 행정 건물은 전통적 요소와 유럽의 재료, 기법, 활용 방법이 훌륭하게 혼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