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상세 정보
- 국가 대한민국(Korea, Republic of)
- 위치 서울시(Seoul City)
- 좌표 N37 32 60|||E126 58 60
- 등재연도 1997년
- 등재기준
기준 (ⅱ) : 창덕궁은 유교 예제에 입각한 궁궐 건축의 기본 양식을 따르면서도 건물의 배치나 진입 방식에서는 우리나라 궁궐 건축의 다양한 특성을 보여 준다. 궁궐의 정문인 돈화문은 서남쪽 모퉁이에 위치해 있으며, 정문의 진입로에서 직각으로 두 차례 방향을 틀어야 정전에 도달할 수 있는 구조이다. 지형지세에 따라 조성된 이러한 진입로의 배치는 남북 방향의 일직선 중심축을 따르는 경복궁이나 중국의 궁궐과는 차이가 있다. 건물과 주변 환경이 잘 조화된 창덕궁의 궁궐 배치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궁궐 건축양식의 상호 교류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우리나라 궁궐 건축의 창의성을 보여 준다.
기준 (ⅲ) : 창덕궁은 전통 풍수지리 사상과 조선왕조가 정치적 이념으로 삼은 유교가 적절히 조화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전통 풍수에 입각하여 선정된 입지와 유교 이념에 따라 상징적, 기능적으로 배치된 창덕궁의 건물들은 조선 시대 고유의 독특한 유교적 세계관을 보여 준다.
기준 (ⅳ) : 창덕궁은 원래의 자연 지형을 존중하기 위해 궁궐 건축의 전통을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창조적 변형을 가해서 지어졌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자연적인 산세와 지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정형성을 벗어나 자유롭게 건물을 배치해 건축과 조경을 하나의 환경적 전체로 통일시킨 훌륭한 사례이다
요약(내용)
창덕궁이 자리한 곳은 언덕 지형으로 평탄한 곳이 많지 않다.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이러한 불규칙한 지형지세를 이용해 궁궐 건물을 경내 남쪽에 배치하고, 북쪽 넓은 구릉에는 비원이라고도 불리는 후원을 조성하였다. 자연 지형을 이용해 건물을 세운 까닭에 궁궐 건축의 전형적인 격식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과 뛰어난 조화를 이루는 특색을 지녔다.
창덕궁은 경복궁의 이궁으로 조선 전기의 약 200년 동안 왕의 통치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나 16세기 말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소실된 도성 내 궁궐 중 가장 먼저 중건되며 이후 약 250년 동안 조선왕조의 정궁 역할을 했다. 건축사에 있어 조선 시대 궁궐의 한 전형을 보여 주며, 후원의 조경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왕실 정원으로서 가치가 높다
창덕궁은 수세기 동안 한국의 건축과 정원, 조경 설계, 관련 미술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창덕궁은 아름다운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세련된 건축적 가치를 보여 준다. 복합 건축물인 창덕궁은 극동 지역의 건축과 정원 설계의 우수 사례로서 주변 환경에 조화를 이루고 있고, 해당 지형에 적합하게 지어졌으며, 자생종의 수목들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탁월하다고 평가된다.
조선왕조의 초기에 수도는 개성과 한양(현재의 서울)으로 번갈아 이전되었다. 1405년, 태종(재위 1400∼1418)은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옮겼다. 기존의 경복궁이 길하지 못하다고 여긴 태종은 새로운 궁궐의 건축을 명하고 이를 창덕궁이라 이름 붙였다. 창덕궁은 풍수지리에서 서울 북쪽을 수호하는 산인 응봉산 자락에 있는 58㏊의 불규칙한 직사각형 지대에 있다.
궁궐의 건축을 위해 만든 궁궐조성도감(宮闕造成都監)은 전통적 설계 원칙에 따라 업무용과 주거용 건물로 구성된 복합 건축물을 지었다. 창덕궁은 전면의 궁궐, 후면의 비원, 세 개의 문과 더불어 정사, 주거, 의전을 위한 세 개의 건물 등으로 구성된다. 주 건물들(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등)은 1405년에 완공되었으며, 이후 7년 동안 나머지 주요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창덕궁은 1462년에 북서쪽으로 확장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에는 한양의 다른 중요 건축물들과 함께 불에 타 허물어지기도 했다. 선조가 1607년에 창덕궁의 재건축을 명하여 1610년에 완료되자 창덕궁은 정사를 돌보고 임금과 왕비가 거주하는 곳이 되어 258년 동안 그 기능을 유지하였다. 이후 다소 변화가 있었지만, 재건축 작업은 항상 원래의 설계에 충실하게 따랐다.
2층으로 된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06년에 지어졌고, 화재를 입어 1607년에 재건축되었다. 돈화문과 동일한 양식으로 지은 1층짜리 인정문(仁政門)은 정사를 돌보는 데 쓰이던 정전으로 연결된다. 1592년과 1803년에 화재로 파손되었던 웅장한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이 바로 그 안에 있다. 인정전은 두 겹의 단 위에 지은 2층 건물로, 네 개의 거대한 기둥들로 지탱되고 있다. 인정전 안의 조각을 새긴 천장 보개(寶蓋) 아래 연단에는 정교한 어좌가 놓여 있으며, 그 용마루에는 독수리와 용 같은 수호 동물이 조각되어 있다. 위로 올라가는 주 계단은 신화 속 수호 동물들의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다. 인정전 동쪽에는 왕이 일상 업무를 보던 선정전(宣政殿)이 있는데, 푸른 기와를 올린 소박한 건축물이다. 그 옆에는 또 다른 소박한 건물인 희정당(熙政堂)이 있는데, 이곳에는 왕의 침전과 신하들의 침실이 있었다.
근처의 대조전(大造殿)은 왕비를 위한 건물이다. 대조전의 정원은 잔디, 나무, 꽃, 연꽃 연못, 수목을 배경으로 한 정자 등으로 꾸몄다. 정원에는 자생종 나무 100종 26,000개 표본과 함께, 주목(朱木), 돌소나무(stone pine), 스트로부스 소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등 외래종 나무 15종 23,000개의 표본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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