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제일산(東南第一山)이라고 불리우는 구화산은 환남(晥南안휘성남부) 청양현(靑陽懸)에 위치. 산중에는 99개 산봉이 서로 아름다움을 다투는데 천대(天臺), 련화(蓮花) 등 9산봉이 가장 이름있다. 산봉 전체 모양이 연꽃같아 연화의 화(花)를 땄는데 화(花)자와 화(華)가 음이 같아 구화산(九華山)이라고 이름지었다. 구화산은 산봉이 첩첩하고 삼림이 깊고 물이 맑으며 푸른대나무와 소나무가 울창창하고 자연풍경이 유정하고 아름답다. 당(唐)나라때, 이백(李白)이 구화산을 다녀온적이 있다. 이백은 구화산이 산좋고 물 맑아 경치가 기이하게 아름다운것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하며 시구를 남겼다. "구강(九江)에서 구화봉(九華峰)을 멀리 바라보니 천하(天河)에 푸른 은하수 걸린듯하고, 그가운데 아홉송이 연꽃이 피어난듯 하다네 " "구화산의 이름난 명소로는 천대효일(天臺曉日), 오계산색(五溪山色), 도암폭포(桃岩瀑布), 서담인월(舒潭印月),구자천성(九子泉聲),련봉운해(蓮峰云海), 평강적설(平崗積雪), 동애안좌(東崖晏坐), 천주선적(天柱仙迹),화성만종(化城晩鐘) 등 10경. 구화산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의 도장(道場), 자고로 불교 신도들이 선망하는 이상경지(境地), "구화 (九華)1000개 사원, 구름과 안개속에 있다"는 묘사가 있다. 동진시대(東晉時代), 천죽(天竹)스님이 바다 건너 이 산에 와 경학을 전수하고 암자를 세웠다. 당(唐)나라이후, 불교사원들이 여기에 속출, 전성시기 "구화천사(九華千寺)"라는 설이 있었으며 "연화불국(蓮花佛國)"으로 불리웠다. 명(明), 청(淸) 두 조대 불교발전의 전성기에 중국 4대불교명산의 하나로 되였다. 현존 사원 84채, 불상 6400여존, 이름난 사원들로는 감로사(甘露寺),지국사(祗國寺), 동애사(東崖寺), 백세궁 사대종림 (百歲宮四大慫林), 화성사(化城寺), 육선전(肉身殿),통혜암(通惠庵), 배경당(拜經堂), 천대사(天臺寺), 혜거사(慧居寺) 등이다. 각 사원에 수장된 진귀한 문화재는 2000여점, 잘 보존되고 그 수가 많아 4대 불교명산중 으뜸이다. |
중국은 불교문화가 아주 깊은 나라입니다. 하여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승려들이 경치가 수려하고 아늑한 심산 속에 들어가 수련하였으며 이로부터 산은 불교로 하여 이름이 나고 불교는 산으로 하여 산만큼 이 세상에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중국에는 사대 불교 명산이 있습니다. 이 사대 불교 명산으로는 산서성의 오대산, 사천성의 라미산, 절강성의 보탑산과 안휘성의 구화산인데 모두 경치가 아름답고 향불이 끊기지 않는 곳들입니다.
중국 중부의 안휘성 서부 청양현에 위치한 구화산은 그 둘레가 120평방킬로미터에 달합니다. 해발이 1200여 미터 정도인 구화산은 그리 높지 않은데 산봉이 약 30개 정도 있습니다. 최고봉의 해발고도 1342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산은 높고 낮음이 기준이 아니라 신선이 있으면 유명해진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구화산은 두 사람에 의하여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1300여 년 전 당나라때 시인 리백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당 나라 때 중국에 온 신라-지금의 한국인 신라 왕자 김교각입니다.
시의 신선으로 불린 리백은 이곳에 와서 이 산을 보고 시흥이 도도하여 많은 시를 썼고 구자산이라는 원래의 이름은 구화산으로 고쳤습니다. 리백은 아홉 개의 산봉을 가진 이 산이 연꽃과 같다고 해서 구화산이라고 이름을 고친 것입니다.
신라 왕자 김교각이 이 구화산에 도착한때는 24살 때였습니다. 이곳에서 일생동안 수련한 김교각이 원적했을 때 그의 시체는 3년 동안 썩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하여 사람들은 그가 불경에 나오는 지장보살이 회생한 것으로 인정했으며 이로부터 구화산은 지장보살 도장으로 되었습니다.
리백과 김교각으로 하여 구화산을 후에 연꽃의 불교 나라로 불리게 되었으며 많은 불교 신자들과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구화산에 이르면 주위가 모두 푸름에 싸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 푸르른 산속에 가끔 노란 벽에 검은 기와의 건물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사찰들입니다.
김교각은 바로 이런 사찰에서 75년을 수련하고 99살 때 원적했다고 합니다. 그의 시체는 도자기로 만든 용기 안에 안치되었는데 3년 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듯 변함이 없어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극치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구화산은 기후가 비교적 습한 곳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태양만 나오면 이불들을 내다 볕쪼임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시체가 썩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 장악한 과학지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사서 기재에 의하면 구화산에서는 썩지 않는 시체가 14구 나왔습니다. 이 구화산에서 현재 직접 볼 수 있는 썩지 않은 시체는 5구입니다. 그 중 김교각의 육신은 1200여 년 전에 한 백옥으로 된 석탑 안에 안치되어 육신 보전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지장산사안에는 가사를 걸친 야윈 노인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그는 1991년에 원적한 자명대사인데 그는 자신의 시체를 불에 태우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의 유체를 독안에 안치했습니다. 원래는 3년 뒤에 그의 유체를 독안에서 꺼내야 하는데 제자들이 그만 잊어버리고 4년이 지난 뒤에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제자들이 독 뚜껑을 열었을 때 자명 대사의 옷은 다 썩었지만 그의 육신은 하나도 부패하지 않고 생전과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구화산 정상의 백세궁에는 300여년을 보존해온 무하스님의 육신도 있습니다.
케블카를 타고 산으로 오를수록 산세는 점점 더 험해지고 산봉들 사이로 구름바다가 형성됩니다. 그 아래로 검은 기와에 흰 벽의 건물들이 유난히 눈에 띕니다.
더 올라 해발 1200미터의 고 배경 대에 이르면 속세를 멀리 벗어난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전한데 의하면 고 배경대는 김교각이 구화산에서 불교 경서 [화엄경]을 읽던 곳인데 그는 한 자를 읽고는 한번 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경건함의 극치인데 그가 무릎을 꿇고 경을 읽은 곳에는 지금도 커다란 발자국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중국(中國)여행 > 기타(중국여행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10대 관광도시 항주(杭州) (0) | 2015.12.10 |
---|---|
강서성 우위안(婺源)-월량만(月亮湾) (0) | 2015.12.10 |
[안휘성] 중국 4대 불교 명산 구화산(九華山) (0) | 2015.12.10 |
붉게 물들은 대륙의 장강(长江)-重庆长江变“红河” 或为河沙所致 (0) | 2015.12.10 |
[안휘성] 안휘성 남부의 고대 촌락지 홍춘(宏村 굉촌) (0) | 2015.12.10 |